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와라노 사이 (문단 편집) === 생전([[헤이안 시대]]) === 일본의 [[헤이안 시대]]에 활동했던 [[기사(바둑)|바둑 기사]]로[* 작중 초반에 잠깐 나온 언급에서 [[무라사키 시키부]]나 [[세이 쇼나곤]]도 바둑을 두었다고 히카루에게 알려주는 걸 보면 그가 살았던 시대는 이들이 활약한 연대와 동시대인 [[10세기]] 후반에서 [[11세기]] 초반 무렵으로 추정된다. 한국사의 [[고려]] 시대 초기와 겹치는 시기.][* 헤이안시대는 신라 시대 후반인 [[794년]]에 시작되어 [[고려]] 시대 [[무신정권]]이 세워질 무렵인 [[1185년]]에 끝났다. 당시 고려와 일본 모두 문인귀족 중심이었던 사회권력이 무신에게 넘어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.] [[천황]]의 바둑 스승이었다. 쉽게 말해 천황에게 뛰어난 바둑 실력을 인정받고 관직까지 받은 인물.[* 다만 당시 사이가 천황의 또 다른 바둑 스승보다 객관적인 실력 면에서 더 뛰어났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.] 그러던 어느날, 다른 바둑 스승이 천황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건 1명이면 충분하다고 간언하였고, 이게 받아 들여져 승자가 바둑 스승으로 남는다는 조건이 달린 대국에 임하게 되었다. 이 대국에서 사이는 백을 잡았는데,[* 1939년 [[혼인보전]]에서 덤이 도입되기 전까지 바둑에서 백에 덤을 주는 규칙은 없었다. 그래서 옛날에는 바둑 기사들끼리 승부를 할 때 단판 승부 같은 홀수 대국이 아닌 10번기 같은 짝수 대국으로 우열을 가렸다. 다만 작중 사이와 상대방의 대국은 정황 상 단판 승부로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.] 우연히 상대방의 흑돌 통에 백돌이 1개 섞여 있었다. 본래라면 매너 상 섞여 있다고 말하고 돌려줬어야 했는데, 상대방은 슬쩍 자기가 따낸 돌로 만들어버렸고 이를 눈치챈 사이가 지적하자 "니가 이기려고 그러지 않았냐?"며 [[적반하장]]을 시전했다. 심지어 대국을 관전하고 있던 천황이 그냥 대국을 계속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제대로 바로잡을 기회도 사라져 버렸고, 결국 [[멘탈붕괴|평정심을 잃어버린]] 사이는 허무하게 패배하고 말았다. 결국 바둑 스승에서 짤린 것도 모자라 [[부정행위]]를 저질렀다는 억울한 [[누명]]까지 쓰고 천하의 나쁜 놈 취급을 받으며 궁에서 쫓겨난 사이는 식음을 끊고 3일간 배회하다 강에 뛰어들어 향년 20세의 나이로 자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